<프롤로그: 意识不灭 불멸의 의식>
중앙탑 회의실에서,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여명 계획에 대한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광계성 개조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금속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군사 본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군사 본부는 광석 채굴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군사 본부라는 네 글자를 듣자,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깨어난 뒤에 통신기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많은 친숙한 이름들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샤오이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그에게 보낸 소식들도 모두 바다에 가라앉은 것 같았다.
다만 산발적인 정보를 통해 나는 그의 근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여명 계획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이기적이고 흉악한 본색을 드러내자, 샤오이는 자연스럽게 선두에 서서 군사 본부를 이끌고 최전선에서 돌격했다.
전쟁은 길고 참혹했다. 정의의 승리는 오래 걸렸고 죄인은 합당한 처벌을 받았지만, 전쟁에서의 희생자는 거대하고 차가운 숫자만은 아니다.
군사 본부는 큰 손실을 입었고, 이 무게는 거의 승전의 기쁨을 압도했다. 그들은 또한 대량의 전후 복구 작업을 맡고 있기 때문에 오늘 회의에 샤오이는 참석할 수 없었다.
회의가 끝난 뒤 나는 곧바로 군사 본부로 향했다.
예전의 그 위엄 있는 정문으로 들어서자, 나는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졌다.
광계성의 안전과 희망을 수호하는 이곳은 전쟁의 피해로 곳곳이 파손되었다.
적지 않은 기계 부품들이 땅 위에 흩어져 있어 마치 그 전쟁의 함성과 총소리가 아직도 공기 중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광활한 장소의 모든 것이 어제와 같았다. 그리고 나와 샤오이가 마음의 문을 열었던 그 철봉 옆에 우뚝 솟은 낯익은 뒷모습이 조용히 오랫동안 서있었다.
내 마음속은 온갖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그가 감추었던 분노 때문에, 그가 나를 떠나갔다는 슬픔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그가 무사하다는 안도감 때문에......
나는 시큰한 눈가를 문지르고 간신히 마음을 추스린 뒤에 천천히 그의 뒤로 걸어갔다.
"샤오이......"
그는 침묵의 벽처럼 돌아서지 않았다.
"너 왜 대답 안 해, 날 못 보겠어?
보니까 너도 네가 한 일이 얼마나 너무했는지 알고 있는 것 같네!"
미동도 하지 않는 그의 훤칠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목소리는 거의 울먹거렸다.
"정말 너무했네. 내가 널 위해서 그를 제대로 혼내줄게, 어때?"
"그건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일이니까, 그럴 입장은......"
갑자기 울린 이 목소리가 너무 익숙해서, 나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이 유유자적하게 내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샤오이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잠깐만......그럼 이건?"
아까 내가 대화를 시도했던 그 사람 앞으로 몇 걸음 다가서자, 안드로이드의 딱딱한 몸통과 창백한 얼굴이 곧바로 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내가 교체한 몸이야.
누군가가 잘못 봤나 보네."
그러니까 나는 몸통에다 대고 한참 동안 화를 낸 것이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돌릴 수 있었지만, 샤오이의 낮은 웃음소리는 피할 수 없었다.
"왜 잘 치워두지도 않고 밖에 둔 거야. 게다가 네 제복을 입고 있는데, 누가 알겠......"
구차한 내 모습을 다 소화하기도 전에 그의 웃음은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나를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이건 부드러운 포옹이었다.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이 한순간에 쏟아졌다.
"내가 널 걱정하게 만들었네.
비록 지금이 다음 생은 아니지만, 난 아직 너한테 포옹을 빚지고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추억이 샤오이의 말과 함께 다시 떠올라 마치 그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가 혼비백산한 채로 광계성으로 돌아온 뒤에 우체통에서 마지막 편지 한 통을 발견했던 그날로.
분명 그때 내 눈앞은 온통 눈물 투성이었고, 두 손은 덜덜 떨려서 편지지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었지만 그 위의 모든 말들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미안해, 직접 얼굴을 보고는 작별 인사를 못할 것 같아.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꼭 네게 이별의 포옹을 해줄게.'
"무슨 이별의 포옹이야, 나는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샤오이는 나를 놓아주고는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싸 안으며 눈물 자국을 닦아주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뭐라고 설명해 줄 줄 알았지만, 그는 한 번 더 나를 안아줄 뿐이었다.
"그럼 지금 이건, 우리의 재회를 축하하는 포옹인 거야."
오랫동안 가슴속에 쌓여있던 모든 감정들이 이 품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손을 뻗어 그를 다시 끌어안았다.
"이제 나한테 화난 거 없지?"
"아니, 내가 널 벌써 용서했다고 생각하지 마."
"알았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처리해.
제가 이제 당신을 뭐라고 불러드려야 하죠, 집행관님?"
샤오이는 내게 고개를 숙이고 약간 놀리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호칭은 내게 나의 신분과 지금 지구가 처한 상황을 일깨워주었다.
잠시 후, 나와 샤오이는 처음 그랬던 것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철봉 위에 앉았다.
"군사 본부에 지금 병력이 얼마나 남아 있어?"
"종전의 3분의 2도 안 돼."
"그렇게 피해를 많이 입었다니......"
"그래도 다행인 건, 이 희생이 헛되지 않았어."
샤오이의 어조는 여느 때와 같았지만, 군사 본부의 군대장으로서 말하지 못한 고통이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샤오이는 무슨 신호를 받았는지 손을 들어 통신기를 한 번 보고는 철봉에서 깔끔하게 뛰어내렸다.
"미안한데, 나 잠깐 나갔다 와야 될 것 같아.
돌아오면 연락할게."
나는 아까 회의에서 언급됐던 내용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가 지금 바쁜 건 광석 채굴 지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광산에 가려고?"
"수색팀이 땅에서 광석 자원을 발견했다 그래서, 내가 가서 보려고."
샤오이를 다시 만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난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지금 이게 가장 중요한 일이란 걸 잘 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음 업무 일정을 생각해 보고 결정을 내렸다.
"나 너랑 같이 갈게."
샤오이는 놀랐는지 눈썹을 치켜올렸다.
"지금의 너는 더 이상 임무로 실적을 올릴 필요는 없을 텐데."
"하지만 지휘관으로서, 각 부처의 업무 상황은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모든 부처의 책임자들이 너처럼 믿을 만해서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거든.
그래서 오히려 내가 제일 한가한 사람이 됐어."
내가 샤오이에게 윙크를 하자 그는 나를 보며 총애의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집행관님께서 친히 오셔서 지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환영합니다."
샤오이는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똑같은 발걸음으로 따스하고 밝은 햇살을 마주하며 걸어갔다.
나는 묵묵히 소원을 빌었다. 이번에, 우리의 미래도 이렇게 밝은 길이 가득하기를.
<意识不灭 불멸의 의식 I>
샤오이는 숨이 곧 끊어질 듯한 안드로이드 동료를 바라보며 뜻밖의 행동을 했다.
초대형 채굴기가 파헤쳐진 지면 앞에서 멈춰 섰다. 채굴 흔적이 가득한 구멍에서 흙과 돌멩이들이 드러났고 이어 숨겨져 있던 광산이 어렴풋이 보였다.
나와 샤오이가 광산에 도착하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이 달려와 맞이했다.
"보고 드립니다. 저희가 전방 산맥에서 막대한 양의 에너지 방사선을 감지했습니다."
"잘했다, 보아하니 전방에 큰 광산이 있는 것 같다.
가자, 가서 보자."
보호 장비를 착용한 뒤 우리 일행은 광산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이 광산 길은 군사 본부가 보강하고 깨끗이 청소했기 때문에 길에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깊숙한 곳으로 갈수록 길은 더 좁아지고 구불구불해졌다.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드디어 눈앞이 확 밝아졌다.
셀 수 없이 많은 지하 광석들이 광산용 램프에 굴절되어 미약한 빛을 반사했고, 그 흐르는 광채가 모든 사람의 얼굴에 기쁨과 희망을 내비쳤다.
"정말 잘됐다, 이 광석들로 지금 부족한 금속들을 보충할 수 있을 거야."
모두가 몹시 기뻐하고 있을 때 최전방에서 길을 찾고 있던 소대가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안돼, 여기 변이체가 있다!"
샤오이의 팔뚝이 순식간에 무기 형태로 변했고,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3소대는 후방에서 지원하고, 1소대, 2소대는 전투에 임한다."
"예!"
샤오이의 명령에 따라 잘 훈련된 병사들은 재빠르게 전투태세에 돌입했고, 광산은 대낮처럼 수많은 불빛들이 켜졌다.
머리를 저리게 하는 바스락 소리가 우리를 향해 계속 다가왔다. 몇 초 뒤, 광석의 그림자에서 어둠 속에 칩복해 있던 변이체들이 하나둘 기어 나왔다.
이 암흑의 변이체들은 온몸이 칠흑같이 어둡고 몸집은 크지 않았지만,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모여 있는 모습은 충분히 소름 끼쳤다.
샤오이는 몸을 돌려 나를 보았고, 나는 바로 그의 뜻을 이해했다.
"걱정하지 마, 나는 내가 지킬게.
참, 너도 몸조심해야 돼!"
샤오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어선 최전방으로 향했다. 나는 무기를 꺼내 조용히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병사들과 함께 대기했다.
명령이 떨어지고 대열을 정비하는 사이에 돌격한 병사들은 이미 변이체와 치열한 교전을 시작했다.
그 날렵한 그림자가 재빠르게 검은 그림자 속을 누비는 것을 보고 내 심장은 북을 치는 것 같았지만, 손가락은 시종일관 침착하게 방아쇠 위에 남아 변이체를 조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변이체의 공격에 구멍이 뚫렸고, 샤오이의 질서 정연한 지휘에 따라 병사들은 각자 도망치는 변이체를 추격했다.
위험에서 벗어난 걸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샤오이는 무거운 얼굴로 앞에 서있었다.
내가 서둘러 앞으로 달려가 보니 안드로이드 병사 한 명이 땅 위에 누워 있었는데, 전투 중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푸닝이었다. 그는 정말 심하게 다쳤고, 의료진은 1분 1초를 다투며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방금 한 무리의 변이체가 기습했는데 푸닝이 맨 앞으로 돌진했어."
"너는? 너는 괜찮아?"
나는 황급히 위아래를 훑어보며 샤오이가 무사한 것을 보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한참 뒤, 의료진은 결국 일어섰고 우리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푸닝은......"
"그의 중추 계통 센서가 크게 파괴되었고, 그 부품을 교체하는 데에는 수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 동안 산소 부족으로 인해 뇌가 먼저 죽게 될 겁니다."
나는 샤오이의 손을 꽉 잡았다. 안드로이드에게도 결국 죽음이란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이다.
부대를 따라 광산으로 동행한 의료진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빠르게 다른 부상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나와 샤오이는 푸닝의 곁을 지키며 그의 호흡이 점점 느려지는 것을 보았다. 생명이 사라지는 과정은 이렇게나 평온했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나는 잠자코 곁에서 침묵을 지키던 샤오이를 바라보았고, 그도 나를 보더니 무슨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샤오이는 작은 커넥터를 푸닝의 머리 뒤에 꽂았다. 그러자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그의 미간은 찌푸려졌고, 뭔가 기다리는 듯 눈빛에서 초조한 기색이 내비쳤다.
갑자기 푸닝의 두 눈동자에서 한 가닥의 희미한 푸른빛이 떠올랐다. 그의 정수리 위로 한 줄의 백색 데이터가 나타났고, 머리 위의 암석을 통과하여 천천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멍하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았다.
"이게 뭐야?"
"가상 의식 송신기는 사람의 의식을 클라우드 데이터베이스로 전송할 수 있어.
다만 아직은 테스트 단계라 나도 방금은 모험해 본 거야."
"의식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는 건, 나중에 푸닝을 되살릴 수도 있다는 뜻이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샤오이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푸닝의 뇌는 아까 의료진이 말한 대로 이미 사망했어.
일이 잘 된다면, 푸닝은 가상 세계에서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가상 세계?"
"임무가 끝나고 나면 데리고 가줄게. 그럼 알게 될 거야."
가상 세계에 접속하는 통로에는 마치 동화 속 천국의 성광처럼 맑고 깨끗한 흰색 빛이 가득 깔려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눈앞을 스치는 그 짧은 순간에 우리는 땅 위로 떨어졌다.
나와 샤오이는 이 데이터 구조 세계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고, 그의 안내에 따라 나는 빠르게 이 세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곳은 인간이 클라우드 데이터베이스의 방대한 정보를 빌려 시뮬레이션한 가상의 지구인 것이다. 사람들은 가상 의식 송신기를 통해 자신의 의식을 이 데이터 세상에 업로드할 수 있다.
그래서 안드로이드의 의식은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인간은 이 가상 세계에 접속해서 그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꽃밭에서 푸닝을 찾았다. 그는 순수한 호기심과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활짝 핀 꽃을 관찰하고 있었다.
"푸닝이야! 네가 방금 성공했나 봐!"
샤오이도 푸닝을 찾은 순간 분명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미소 지었다.
푸닝은 꽃밭 기슭에 서 있는 우리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며 흥분한 얼굴로 달려왔다.
"여기에 다른 사람도 있었군요! 안녕하세요!
잠깐만요. 저 낯이 좀 익은데, 우리 혹시 어디서 본 적 있나요?"
"저 사람 기억 안 나? 그는 샤오이고, 네 대장이잖아."
"대장? 내 대장은 분명 팔리어라고 하는 영감님인데......
당신 말 듣고 생각났어요. 전 입대한 지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죠?"
"너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
"전 단지 제가 긴 꿈을 꾼 것 같다는 것만 기억이 나요. 그런데 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 잊어버렸어요."
샤오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푸닝의 어깨를 두드렸다.
"잊어버려도 괜찮아, 그런 건 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앞으로 넌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거야."
비록 샤오이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한 것 같았지만, 푸닝은 여전히 우리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는 우리의 기억 속 낯선 두 사람과 웃으며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그는 이 아름다운 신세계에서 호기심 가득한 탐험의 여정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다.
난 푸닝의 파일이 생각났다. 그가 안드로이드로 개조되었을 때 나이는 20살도 채 안 되었다고 한다.
푸닝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점점 멀어졌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떠나지 않았다.
"사실 나한테 생각이 하나 있는데."
"내 생각엔, 넌 푸닝의 어머니도 이 세계에 오게 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응, 난 그 모자가 만났으면 좋겠어."
지난번에 우리가 푸닝을 찾았을 때 그는 개조된 뒤라 인간의 기억과 의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알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비록 가상 세계에 살고 있지만 안드로이드였을 때의 그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다.
"나도 물론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아직은 아니야."
"네가 저번에 말한 것처럼 이 기술이 아직은 부족하니까?"
"그건 일면일 뿐이고 또 다른 이유는 이곳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야."
그의 말대로 이곳은 마치 아름다운 이야기의 결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모두가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약속의 땅 같기도 하다. 하지만 풍경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난 개조된 안드로이드가 모두 이곳에 왔으면 좋겠거든."
나는 침묵에 잠겼다. 나도 물론 같은 바람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인류는 아직 안드로이드 병사가 필요하다.
개조된 인간은 전체 안드로이드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지만 위기가 임박했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된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그들의 사명이 완수되고 나면, 그때 이 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거야."
샤오이는 푸닝이 멀어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평안과 평화만이 남아 있는 미래 세계의 윤곽이 그려졌을지도 모르겠다.
<意识不灭 불멸의 의식 II>
안드로이드 군대가 변이체의 협공으로 위험에 빠졌다. 샤오이 앞에 중요한 선택이 놓였다.
지표면의 광석 채굴과 유통은 여전히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병사들은 바쁘게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수송차 한 대가 성과를 가득 싣도 광산을 떠나면서 광석 채집 작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이제 광석을 제련하는 일만 남았어."
광석을 제련하는 일도 군사 본부가 맡고 있지만 이 임무는 광석을 채굴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나는 멀리서 안드로이드가 모기처럼 장소를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고, 샤오이가 내 뒤로 오면서 그의 이 단계 임무도 끝났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
"계획에 따라 순서대로 일을 진행하니까 정말 좋아서."
"그러게, 아쉽지만 곧 이 행성도 떠나야 하고."
전쟁과 오염, 과도한 개발과 파괴로 지구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대지는 작은 풀조차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라는 상흔을 입었지만 결국 이 고난의 행성도 인류의 요람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가상 세계가 있잖아?"
설령 데이터로 되살아나는 한순간의 행복이라도, 인간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억이니까.
"참, 푸닝은 안에서 잘 지내고 있어?"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곧 더 많은 사람들이 푸닝처럼 그 안에 들어갈 거야."
나는 샤오이의 말뜻을 이해했다. 광석 수집 작업이 완전히 완료되면 더 이상 많은 안드로이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 안드로이드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전에 말했던 그 계획인 거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데?"
샤오이는 진지한 눈빛으로 내가 전에 봤던 가상 의식 송신기를 꺼냈다.
"연구부 사람들이 송신기 없이 의식을 전송할 수 있도록 데이터 시스템을 개선했어.
다만......난 그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싶어."
"선택의......자유?"
"모든 사람이 가상 세계에 가고 싶은 건 아닐지도 모르잖아.
그들이 완전한 동면을 원하거나 안드로이드 병사를 계속하고 싶다면, 나도 그들의 생각을 존중할 거야."
"네 말이 맞아. 우리는 절대 다른 사람의 결정에 간섭할 권리는 없으니까."
샤오이는 일어서서 나를 꼭대기 층의 사령실로 데려갔다.
넓은 고리 모양의 파노라마 통유리창을 통해 광산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질서 있게 줄지어 선 안드로이드 병사들이 아래 공터 한가운데 서 있었다.
샤오이는 콘솔 중앙 앞에 서서 양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나만의 힘과 용기를 그에게 전달했다.
"그럼 시작할게."
샤오이는 조작 프로그램의 시동을 걸었다. 화면에는 각각 다른 색의 원이 나타났고, 원 하나하나에 안드로이드 병사들의 정보가 표시되었다.
원 테두리의 가장자리가 차례대로 밝아졌는데, 대부분 선명한 녹색이었지만 일부는 노란색과 빨간색이었다.
"이 색은 뭐야?"
"그들의 선택을 나타낸 거야. 녹색으로 표시된 건 의식을 업로드하는데 동의했다는 뜻이고.
노란색은 계속 병사로 있겠지만, 나중에는 가상 세계에 갈 수도 있다는 거고."
"그럼 빨간색은......"
샤오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잠시 멈추었다. 곧 입을 열고 내게 대답했다.
"그들은 영원히 이곳에 남아 우리를 위해 이 땅을 지킬 거야."
이때 시스템은 모든 안드로이드 병사가 이미 선택을 완료했으며 곧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란 걸 보여주었다.
지난번 푸닝 때처럼 백색의 데이터가 병사들 위로 떠올랐다.
처음에는 산발적으로 조금씩, 그다음에는 수백, 수천 개의 의식들이 흘러 한데 모여들면서 용솟음치는 강이 되었다.
안드로이드에 속했던 영혼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이건 의식과 생명이 응결되어 만들어진 역행의 눈이었다.
나는 샤오이의 손을 꽉 잡고 눈앞의 이 장면이 주는 충격을 느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눈송이 같았던 데이터는 마치 맑은 하늘 속에 녹아내린 것처럼 점점 투명해졌다.
병사들은 안드로이드 몸을 운반해 갔다. 그들은 머지않아 완전한 기계로 개조되어 다른 방식으로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네 눈에는, 그 개조된 안드로이드들이 살아 있는 것 같아?"
샤오이의 눈빛이 내 몸 위에 내려앉았고, 안색은 어두웠다. 나는 그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봤을 땐, 의식만 있다면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샤오이는 무엇인가 생각하는지 잠시 침묵했다.
"사실 그전에 난 그들이 나처럼 본래 인간의 의식을 회복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모두 실패했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아.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선택을 했잖아."
그들이 안드로이드가 될 때는 선택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이 돌아갈 곳은 선택할 수 있었다.
"너도 선택을 했고 최선을 다했잖아, 그치?"
샤오이는 몸을 굽혀 나와 이마를 맞댔다. 서로의 호흡이 상대방에 얼굴에 닿는 것이 마치 부드러운 키스 같았다.
샤오이가 다시 일어섰을 때 그는 한결같이 여유로운 자신감 넘치는 기색을 되찾았다.
"가시죠, 나의 지휘관님. 업로드는 계획의 첫 번째 단계일 뿐이니까."
다시 한번 가상 세계에 접속했을 때 주변 풍경은 이미 적잖이 달라져 있었다.
산들바람이 맑고 푸른 하늘을 지나며 천천히 구름을 휩쓸었고, 집들이 부드러운 잔디 위에 흩어져 있었다.
"정말 예쁘다, 더 고향 분위기도 나고."
"이게 다 푸닝 덕분이야."
멀지 않은 곳에서 처음 온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나와 샤오이는 멀리 군중들의 외곽에 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열정적으로 그들을 북돋아 주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여러분들이 아직 이 세계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는 거 알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함께 이 세계를 탐험하면서 빼앗겼던 지난날들을 모두 만회할 수 있을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새로운 삶을 환영합니다!"
박수 소리가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자 사람들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희망으로 가득 찼다.
"자식, 제법 그럴듯하네."
"이것도 네가 준비한 거야?"
"응, 푸닝이 제일 먼저 이 세계에 들어왔으니까 내가 푸닝한테 나중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데리고 함께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했어.
바로 온전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사람들은 집과 꽃밭을 향해 뿔뿔이 흩어졌고, 곧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대열에 합류했다. 푸닝은 우리를 알아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샤오 대장님, oo 지휘관님 오셨습니까!"
"넌 이미 이곳에 완전히 적응한 것 같네."
"전부 샤오 대장님 덕분입니다, 저를 여기까지 데려와 주셔서요."
지난번에 너무 막연했던 것에 비하면 푸닝의 눈빛은 훨씬 더 확고해졌다. 나는 속으로 정말 기뻐서 그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걸 지체할 수 없었다.
"사실 내가 오늘 온 건 어떤 일이 있어서인데."
나는 눈빛으로 샤오이에게 신호를 보냈고, 샤오이는 허공의 가상 패널을 누르고 명령을 입력했다.
몇 초 뒤, 한 사람의 그림자가 우리 사이에 나타났고 조금씩 이목구비가 뚜렷해졌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노부인, 바로 푸닝의 어머니였다.
원래 푸닝의 경쾌했던 미소는 굳은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은 자신도 모르게 옷자락을 꼬고 있었고, 표정은 약간 어색한 것 같기도, 몹시 절박한 것 같기도 했다. 눈에는 조금씩 눈물방울이 맺혔다.
"엄마......다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노부인은 푸닝의 앞에 와서 믿을 수 없다는 듯 푸닝의 얼굴을 만져보다 마침내 자신의 아들을 꼭 껴안았다.
샤오이는 내 손을 잡고 소리 없이 떠났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 다시 만나 울다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 모자에게 공간을 남겨 주었다.
나는 지금 곁에 서 있는 샤오이를 바라보았다가 또 고개를 돌려 멀지 않은 곳에서 많은 고난을 겪고 마침내 만나게 된 포닝 모자를 보면서 마치 꿈나라에 빠진 것 같은 비현실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비록 우리는 가상 세계에 있지만 그 생생하고 영구한 인간의 영혼은 진실하고, 그들의 감정 또한 영원히 진실하다는 것을.
우리의 꿈속에 살고 있는 그 사람은 미래를 떠돌아다닐 필요 없이 편안하게 살면서 아주 확실하고 진실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샤오이 유물 관련 에피소드: <关于皿中鸢尾 그릇 속 아이리스에 대하여>
투명한 영양 그릇 위에 청자색의 아이리스꽃이 조용히 피어나 있었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꽃잎이 액체 속에 자유롭게 퍼져 있다.
"이건......"
"이 아이리스꽃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어."
눈앞의 익숙하고도 낯선 광경이 내가 이 꽃을 처음 보았던 순간으로 끌어당겼다.
그때 난 샤오이의 집에서 샤오이와 정례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떠나기 전, 샤오이는 내게 이 영양 그릇을 내밀면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난 그때 너무 흥분해 가지고 네가 이 꽃을 어떻게 얻었는지 묻는다는 걸 깜빡했어."
"지상으로 임무를 수행하러 갔을 때, 생물 샘플을 얻었거든.
돌아와서 그 속의 세포를 꺼내달라고 부탁해서 복제했어."
샤오이는 그 청자색 꽃을 보면서 그릇의 외벽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아쉽게도 DNA 정보가 불완전해서 영양 그릇에서만 자랄 수 있고 기를 수는 없대.
그렇지 않으면 이거 하나만 주진 않았을 텐데."
"이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해. 아이리스의 존재는 기적과 같으니까.
선물 고마워, 나 정말 마음에 들어."
"고맙기는, 넌 진작에 나한테 두 송이나 줬잖아."
샤오이의 말은 우리가 어린 시절 처음 만났을 때와 다시 재회했을 때 내가 준 종이 아이리스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건 종이로 접은 건데 어떻게 똑같을 수 있어."
"나한테는 똑같이 소중해."
유리 속의 아이리스 사이로 샤오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두 청록색 눈동자는 아이리스보다 더 눈을 뗄 수 없었다.
"너는 내가 왜 어렸을 때 지상으로 몰래 도망갔는지 알아?"
"아이리스꽃을 찾으려던 거 아니었어?"
"맞아. 그때 난 순진하게 기대했었거든, 어쩌면 내가 모르는 곳에 큰 아이리스꽃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마치 나도 한때는 세상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상의 상황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어.
다행히......다시 올 수 있는 기회는 생겼네."
그릇 속 아이리스는 여전히 피어나며 인류의 아름다운 환상을 굳혀주고 있다.
"어쩌면 이번엔 너의 환상이 실현될지도 몰라."
"응. 그리고 난 믿어, 그날이 그리 멀지만은 않을 거라고."
"그때가 되면 난 너와 함께 아이리스꽃이 온 세상에 피어나게 만들 거야."
"그럼 약속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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