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겨울 햇살이 얇은 천처럼 가로누워 뒹굴며 자고 있는 꼬마 친구들의 몸을 부드럽게 덮어주고 있다.
이곳은 몽청랜드의 입구로, 고양이와 강아지 몇 마리가 편안하게 햇볕을 쬐며 모처럼 이 계절의 따스함을 즐기고 있었다.
나와 샤오이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자 고양이와 강아지가 고개를 들고 우리 쪽을 힐끗 보았지만, 다시 돌아서서 일광욕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 동물들은 전부 침착하네!"
"아마 매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으니까 다들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아."
나와 샤오이는 손을 잡고 창턱에 엎드려 있는 주황색 고양이에게 다가갔는데, 고양이는 열심히 손의 털을 핥으면서 우리가 다가오는 걸 본체만체했다.
"샤오이, 반려동물 소통 전문가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응, 듣기로는 동물들이랑 의사소통할 수 있다던데?"
"맞아.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 소통 전문가는 사실 주인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것에 더 의존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난 항상 네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어."
"나? 왜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샤오이가 평소 집에 있을 때의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집에 있는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넌 다 알고 있는 것 같거든......
가끔씩 난 네가 고양이 언어, 강아지 언어, 그리고 거북이 언어를 알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니까!"
내 말을 들은 샤오이는 실소하며 손을 뻗어 내 볼을 꼬집었다.
"그건 내가 걔네들이랑 오랫동안 지냈으니까, 습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음, 네 말도 일리 있는 것 같아.
그래, 그럼 차라리 여기서 동물들이랑 교감하면서 내 생각을 검증해 보는 건 어때?"
나의 호기심 어린 표정을 본 샤오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너도 해봐도 돼. 너야말로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잖아."
"그럼 내가 먼저 해볼게!"
샤오이의 말에 나는 갑자기 신나서 깡충깡충 뛰었고,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다가 시선을 강아지 한 마리에게 고정했다.
그 강아지는 풍성한 하얀 털을 가지고 있어서 마치 커다란 솜사탕처럼 보였다.
방금까지 강아지는 땅에 엎드려 단잠을 자고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온 것을 알아차리고는 마지못해 눈을 뜨더니 나른하게 우리를 바라보았다.
"안녕, 내 이름은 oo야. 만나서 반가워."
나는 강아지 앞에 웅크려 앉아 한 손을 뻗어 강아지의 작은 발이 내 손 위에 떨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하지만 강아지는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바로 몸을 돌리더니 꼬리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계속해서 잠만 잤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약간 기가 죽었지만 샤오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졸린가 봐. 괜찮아, 다시 해보자."
샤오이의 시선이 한쪽의 풀숲으로 향했고--그곳에는 씩씩한 자태의 고양이가 돌길을 밟으며 산책하고 있었다.
나는 풀숲 가로 가서 고양이에게 가볍게 손뼉을 치며 두 팔을 뻗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야옹야옹~"
고양이는 내가 기대하는 눈빛에 걸음을 멈추더니, 바로 가차 없이 몇 걸음 만에 옆에 있는 담장으로 뛰어올랐다.
고양이는 몸을 곧게 폈고, 도도하게 머리를 들고 하찮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땅 위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나를 흘겨보았다.
그 눈빛은 분명히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하, 어리석은 인간.
"어, 아무래도 집에 있는 애들이 나랑 더 친한 것 같아."
나는 일어서서 효과 없는 교감은 포기하고, 또 앞으로 꼭 두 배로 샤오샤오이 아이들에게 잘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니면 네가 해볼래?"
나의 허탈한 기분을 알아차린 샤오이는 가볍게 나를 안아주었다.
"내가 동물들이랑 교감하는 능력을 포옹으로 너한테 전해줬으니까 다시 한번 해볼래?"
"에?"
샤오이는 그저 나를 위로하려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한쪽에 엎드려 자고 있는 강아지를 향해 반신반의하며 걸어갔다.
다음 순간, 원래 나를 본체만체했던 그 하얀 강아지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곁으로 달려왔다.
뿐만 아니라 나를 향해 끊임없이 꼬리를 흔들었고, 심지어는 발로 내 다리를 잡아당겼다.
나는 바로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눈처럼 하얗고 작은 발을 기쁘게 잡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설마 정말 능력으로 동물들이랑 소통하는 거야?"
하지만 난 바로 다시 의심이 들었다. 샤오이는 분명 동물들한테 한마디도 안 했는데?
샤오이는 신비롭게 웃으며 내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마법의 비밀을 밝혀냈다--
찢어진 반려동물 간식 한 봉지였다.
"아침에 녀석들 훈련시키다가 그냥 주머니에 넣었는데 여기서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어."
"정말 특별한 능력은 바로 그거였네."
모든 것을 알게 된 나는 웃으며 손에 들고 있는 간식 봉지를 흔들었고, 이번에는 아까 그 솜사탕 강아지뿐만 아니라 다른 고양이와 강아지들의 관심을 끌었다.
작은 간식 봉지는 금방 바닥났고, 나는 동물들과 즐겁게 놀고 있는 사람을 보며 입꼬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정말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의 작은 생각도 가장 잘 알아차리는 사람은 오직 샤오이뿐이다.
<아침 에피소드>
밝고 아름다운 햇살이 얇은 커튼을 뚫고 이른 아침 방안에 제멋대로 쏟아졌다. 내가 커튼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대자연의 넘쳐흐르는 풍경이었다.
이곳은 몽청랜드 내의 호텔이고, 높고 긴 창문밖에는 큰 테라스가 있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은 동물들과 친밀하게 접촉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고 한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자 샤오이가 방문을 열었고, 호텔 종업원이 손으로 음식 카트 한 대를 끌고 있었다.
"아침 식사 왔는데 테라스에서 먹을까?"
"좋아!"
곧 종업원은 아침 식사용 우유와 빵, 과일 접시를 테라스의 작은 테이블 위에 하나하나 차려 놓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산들이 이어져 있었고, 금빛 잔디도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꽃무늬 테이블보가 깔려 있고, 간단하면서도 정갈한 음식들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이루었다.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자!"
그렇게 말하고 난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가방 안에 있는 카메라를 꺼냈다.
뜻밖에도 샤오이도 내 뒤를 따라와 티테이블 위에 그가 내게 선물해 준 꽃다발을 집어 들었다.
"같이 놓고 찍으면 더 예쁠 거야."
"역시 샤오 사장님이야, 좋은 제안입니다!"
우리는 테라스로 돌아와 다시 한번 잘 꾸며놓은 뒤, 적지 않게 사진을 찍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샤오이와 함께 아침을 맛보려던 순간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어? 왜 과일 접시가 한 군데 비어있지?"
하얀 접시 위에 여러 가지 잘게 썬 과일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지만, 그 한 귀퉁이에는 아무것도 없어 접시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응? 네가 말 안 했으면 난 몰랐을 거야."
"얼마나 많이 있었던지 간에 난 배고파."
푸짐한 아침 식사를 마주보며 우리는 이 사소한 일은 마음에 두지 않고 함께 즐겁게 식사했다.
바삭바삭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가득한 크루아상을 씹으며 향이 진한 우유를 한 모금 더 마셨을 때, 난 샤오이가 살짝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발견했다.
"왜 그래?"
샤오이는 손가락을 뻗어 아래를 가리켰고, 그의 힌트로 나는 테이블 밑에서 바스락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막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샤오이는 내게 쉿하는 시늉을 했고 바로 허리를 구부려 테이블보를 확 들어 올렸다--
흑갈색을 띠고 있는 레서판다 한 마리가 사과 한 조각을 들고 정신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자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레서판다는 잠시 멍해져 있다가 곧 놀라서 입을 크게 벌리더니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반쯤 갉아 먹은 사과 조각이 데굴데굴 내 발밑으로 굴러왔고, 나도 덩달아 깜짝 놀랐다.
"아!"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뜻밖에도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고, 내 충돌로 테이블 위의 음식들도 흔들렸다.
"조심해."
샤오이는 신속하고 민첩한 눈썰미로 한 손으로 내가 부딪친 곳을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테이블을 안정시켰다.
내가 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샤오이는 눈앞의 어수선한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너희 둘, 누가 누구를 놀라게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샤오이는 입으로는 나를 비웃었지만, 손으로 계속 내가 부딪친 곳을 가볍게 문질러 주었다.
잠시 후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테이블 아래는 이미 텅 비어있었고, 덩그러니 남은 사과 한 조각이 방금 일어난 일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었다.
작은 에피소드가 끝난 뒤, 나와 샤오이는 빠르게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해치웠다.
샤오이는 유원지 지도를 꺼내고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소파에 기대 지도를 읽기 시작했다.
"이따 어디로 놀러 가고 싶어?"
"당연히 여기지!"
나는 귀여운 레서판다가 그려진 구역을 가리키며 단숨에 결정을 내렸다.
"사과를 훔친 '대도'를 찾으러 갈 거야!"
<탐정 파트너>
호텔 정문을 나서자마자 나와 샤오이는 레서판다 구역에 도착했다.
"어쩐지 레서판다가 테라스에 나타났다 했더니, 우리랑 레서판다가 사는 곳이 이렇게 가까웠구나."
"그럼 명탐정님, 아까 그 대도를 어떻게 찾아내실 건가요?"
"첫 번째 단계는 당연히 먼저 이곳의 지형을 익히는 거지!"
입구 잔디밭에는 나무 안내판이 꽂혀 있었는데, 레서판다들은 모두 예방접종을 받았기 때문에 관광객들과 가벼운 접촉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한 레서판다의 습성을 생생한 일러스트로 설명하고 있었다.
"......레서판다는 천성적으로 예민하고 겁이 많다.
레서판다에게 가까이 접근하고 싶다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야 한다."
"확실히 담력이 크진 않더라. 어떤 먹보 고양이보다 잘 놀라던데."
샤오이가 놀리는 것을 들은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양쪽 뺨을 살짝 꼬집었다.
"무슨 소리야, 난 지금 완전 용감해졌다고!"
"응, 나를 만지는 방면에서는 확실히 큰 진전이 있었지."
샤오이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 그의 뺨을 꼬집고 있어야 할지, 아니면 손을 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도 저도 못 하는 내 모습을 본 샤오이는 웃으며 나를 품속에 안았고, 이마에 따뜻한 흔적을 남겼다.
그 이후로 나는 샤오이를 끌고 이 구역을 간단하게 한 바퀴 돌았다.
레서판다가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작은 놀이공원에 가까웠고, 울창한 침엽수림 속에 그네와 미끄럼틀, 링 등 각종 놀이시설들이 놓여 있었다.
멀지 않은 구석에서 사육사로 보이는 사람이 이쪽 기척에 주의를 기울이며 레서판다의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곧 한 마리의 레서판다에게 내 시선이 끌렸고, 두 발로 링을 당기며 능숙하게 턱걸이하는 게 마치 레서판다 세계의 보디빌더 챔피언 같았다.
그 뒤의 다른 레서판다 한 마리는 사방의 관광객들을 무시한 채 엎드려 쿨쿨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마리보다 확실히 훨씬 더 활발하고 외향적인 레서판다 한 마리가 마치 영지를 순찰하듯 호기심에 관광객들 주변을 서성거렸다.
관광객들 거의 모두가 그 몇 마리의 레서판다들을 뚫어져라 바라봤고, 작은 행동 하나에도 이따금씩 비명이 터져 나왔다.
"레서판다도 너무 귀엽다!"
어느새 나는 이 복슬복슬한 귀여운 생물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보아하니 탐정 아가씨께서는 이미 대도 잡는 걸 포기하신 것 같은데요?"
샤오이의 말을 듣자 난 이곳에 온 목적이 생각났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거든, 오늘 반드시 그 사과 조각을 훔친 레서판다를 찾아야 해!"
"이렇게 앙심을 품은 거야?"
"당연하지, 내 사과를 먹었으니까 마수를 피할 순 없어. 어쨌든 만져보기라도 해야지!"
"기세등등하게 말하면서 요구사항은 꽤 낮은데?"
샤오이는 내가 단단히 벼르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내 손을 잡고 달게 자고 있는 레서판다 앞으로 다가갔다.
"이렇게 된 거, 한 마리 한 마리 조사하는 게 낫지."
날씨가 추워서인지 레서판다는 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웅크렸고, 머리마저도 크고 털이 보송보송한 꼬리 속에 파묻혀 있었다.
곁에 있던 한 어린 여자아이가 약간 허탈한 표정으로 엄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여자아이
"엄마, 우리 여기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판다는 왜 계속 잠만 자는 거예요?"
여자아이의 엄마
"아마 판다가 아직 아기라서 그럴 거야. 빨리 자라려면 잠을 아주 많이 자야 하거든."
엄마의 말에 여자아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목소리도 한결 가벼워졌다.
여자아이
"그럼 우리 자는 거 방해하지 말아요."
모녀가 떠나가자 나는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펴고 그사이에 턱을 받치며 영화 속 탐정의 모습을 흉내 냈다.
"샤오 조수, 방금 두 증인의 발언 들었지?"
샤오이는 협조적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고, 능청스럽게 잠깐 생각하다 대답했다.
"그 두 증인의 말대로라면 이 판다 용의자는 지금까지 자고 있었으니 범행할 시간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럼 이 판다의 혐의는 없어졌으니까 다음 판다 용의자를 보러 가자!"
나는 얼굴에 존재하지도 않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링을 가지고 놀고 있는 레서판다 곁으로 샤오이를 끌고 갔다.
그 레서판다는 이미 운동을 끝내고 커다란 타이어 위에 앉아 털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을 때 마침 대나무 잎이 가득한 대야를 들고 오는 사육사가 보였다.
사육사가 대나무 잎을 내려놓자 그 레서판다는 쏜살같이 달려와 대나무 잎 하나를 움켜쥐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레서판다도 대나무 잎을 먹는구나, 저 처음 알았어요."
사육사
"맞아요, 하지만 이 레서판다가 특히나 대나무 잎 먹는 걸 좋아하긴 해요.
누가 사과를 준다 해도 쳐다보지도 않을걸요."
마치 우리에게 증명이라도 하듯, 사육사는 대나무 꼬챙이로 사과 한 조각을 집어 그 레서판다 눈앞에 내밀었지만 과연 레서판다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나무 잎을 갉아먹는데 열중했다.
"정말 자율적인 레서판다네."
"정말 그렇네, 그리고 저녁 운동할 때 야식 노점을 봐도 멈추지 않는 어떤 신을 닮은 것 같아."
샤오이는 놀리고 있는 내 말을 알아듣고 손가락을 구부려 내 코끝을 긁었다.
"맞아, 그런데 어떤 먹보 고양이가 저녁 운동에 합류한 이후로 나도 야식을 먹는 횟수가 많아진 것 같아.
지난번엔 바비큐, 지지난번에는 마라탕, 그리고......"
"콜록콜록!"
나는 재빨리 두 번 기침하는 척하며 샤오이의 다음 말을 막았다.
"보아하니 이 판다도 아닌 것 같으니까 우리 또 다른 판다 보러 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난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앞장서서 등을 돌렸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샤오이는 두 걸음 만에 나를 따라잡았고, 내 손을 잡고 마지막 레서판다가 있는 곳으로 향해 걸어갔다.
<소원 성취>
그 레서판다는 정말 인기가 많아서 주위의 많은 관광객들이 모두 그 레서판다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레서판다는 평소 자기 방식대로 귀여운 작고 빠른 보폭으로 자신만의 순찰 코스를 돌았다.
내 머리가 아파질 무렵, 그 레서판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나와 샤오이를 향해 달려왔다.
"어?"
"널 꽤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는 바로 몸을 웅크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으며 그 레서판다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레서판다는 탐색이라도 하듯 천천히 나를 향해 두 걸음 다가왔고, 그다음에 천천히 걸어왔다.
레서판다를 곧 만질 수 있을 것 같아 기뻐하는 순간, 레서판다는 갑자기 내 옆에 있는 샤오이를 보고 튀어 오르더니 두 발을 들고 투항하는 자세를 취했다.
우리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레서판다는 샤오이 다리에 '퍽'하고 달려들더니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났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풉......샤느님은 정말 카리스마가 넘쳐서 레서판다도 보자마자 다리 밑에 엎드려서 절할 정도라니까."
어처구니가 없던 샤오이는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내 볼을 꼬집었다.
"날 보고 제 발 저린 거야."
"제 발 저렸다고? 무슨 말이야?"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는데, 그 레서판다가 설마......
"맞아, 쟤가 네가 계속 생각하던 그 대도 레서판다야."
"진짜? 너 어떻게 알았어?"
나는 이미 멀리 달아난 레서판다를 의심스럽게 바라봤지만, 잠자고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다른 두 레서판다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얼굴 무늬 보고 알아봤어."
샤오이의 귀띔으로 나는 그 세 마리의 레서판다 얼굴을 진지하게 관찰했고, 아니나 다를까 다른 점을 발견했다.
그 '대도' 레서판다는 오른쪽 눈가에 작게 흰 털이 있어서 유난히 특별해 보였다.
"우리 사과 조각을 훔친 그 레서판다는 분명 틀림없이 레서판다 계의 킹카일 거야."
"아까는 뭐가 뭔지 구분 못하겠다면서 지금 벌써 외모 보는 법을 배운 거야?"
"맞아!"
나는 자신 있게 손가락을 뻗어 샤오이의 오른쪽 눈 밑을 톡 건드렸다.
"왜냐하면 그 레서판다는 내 눈앞에 있는 이 킹카랑 똑같은 눈물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내 말에 웃은 샤오이는 내 손을 잡고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네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오늘 네가 레서판다를 만질 수 있게 도와주는 임무를 완수하지 않으면 집에 못 돌아갈 것 같아."
마술을 부리듯 샤오이는 막 잘린 사과 조각이 담긴 봉지를 꺼냈고, 날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와, 이건 언제 준비했어?"
"탐정 아가씨의 유능한 조수로서, 당연히 미리 대비하는 법은 배워야죠."
그제서야 난 근처 노점에서 먹이를 주는 용도로 사과 조각을 팔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마 샤오이는 내가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 샀을 것이다.
샤오이가 이렇게 준비를 단단히 한 걸 보니 나도 다시 자신감이 타올랐다.
"샤느님이 있으니까 오늘 '대도' 래서판다를 잡는 임무는 반드시 완수할 수 있을 거야!"
서식지는 식생이 울창하고 넓어서 그 레서판다는 도망치자마자 자취를 감췄고, 우리는 수풀과 기구 속을 한참을 찾다가 결국 전략을 조정하기로 했다.
샤오이는 사과 조각을 내게 주었고, 가장 공격력이 없어 보이는 내가 앞장섰다. 내가 사과 한 조각을 꺼내 높이 들고는 공중에서 흔들자 바로 수풀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기척이 들려왔다.
그 레서판다는 갈망하는 표정으로 내 손에 있는 사과를 바라보며 조용힌 한 걸음 내디뎠지만, 고개를 돌리고 한쪽에 있는 샤오이를 보더니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레서판다의 시선이 이렇게 사과 조각과 샤오이를 오가면서 엄청 망설이는 듯 발걸음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여러 번 반복했다.
"에헴, 조수가 잠깐 자리 좀 비켜줘야겠는데, 보아하니 이 용의자 판다는 나랑 단둘이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나는 샤오이를 향해 눈을 깜박거렸고, 샤오이는 일부러 과장되게 한숨을 쉬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샤오이가 물러나는 걸 보자마자 과연 래서판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와 결국 내 손안의 사과 조각을 한입에 베어 물었다.
나는 희망이 있는 걸 보고 서둘러 또 사과 한 조각을 꺼냈고, 이번에 레서판다는 사과 조각을 가져갔을 뿐만 아니라 내 손을 문지르고 내 옆에 앉기까지 했다.
나는 소원대로 레서판다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뒤돌아 샤오이를 향해 승리의 손짓을 하자 그도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내 성공에 화답했다.
<따뜻한 밤의 맹세>
하늘색이 어두워지면서 석양의 마지막 한 점의 빛무리마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달은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었고, 야외 콘서트의 모닥불이 어둠의 낙원 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특별히 콘서트를 보러 온 관광객도 적지 않아서 모두들 삼삼오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간식을 나누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콘서트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이미 충분히 떠들썩했다.
내가 모닥불을 감상하고 있을 때, 샤오이가 가볍게 내 손을 잡았다.
"왜 그래?"
"저기 봐봐."
샤오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 보니, 낮의 그 '대도' 레서판다가 구석에 숨어서 모닥불 옆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을 궁금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또 만났네. 우리 저 레서판다랑 정말 인연이 있나 봐."
나는 군중 속을 벗어나 그 레서판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번에 레서판다는 놀라서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먼저 달려오더니 다정하게 내 다리 위로 몸을 비볐다.
나는 기쁘게 레서판다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이렇게 꽤 시간이 흘렀으니 레서판다가 더 이상 샤오이를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샤오이를 향해 손짓했다.
예상과 달리 샤오이가 가까이 다가와서 몸을 숙이기도 전에 레서판다는 대낮처럼 놀라 쏜살같이 도망쳤다.
모처럼 퇴짜를 맞아서 그런지, 샤오이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샤오이를 향해 돌아서서 까치발을 들었다.
"레서판다가 너 못 만지게 하니까, 내가 대신 만져줄까?"
다음 순간, 내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샤오이는 입가에 나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오늘 작은 동물들이랑 그렇게 오래 놀아놓고, 특히 그 레서판다랑.
근데 머리를 쓰다듬는 것만으로 날 보내려는 거야?"
나는 샤오이의 목덜미를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그와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왜 아직도 레서판다를 질투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레서판다는 분명 그렇게 귀여우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샤오이는 벌을 주듯 가볍게 코끝을 깨물었다.
이번에는 아프지도 않았고, 샤오이가 일부러 냉담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오히려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물론 진짜 웃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도 눈을 깜빡거리며 일부러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샤오이 오빠, 오빠가 제일 좋으니까 빨리 나 좀 내려줘요!"
이 말을 들은 샤오이는 오히려 나를 더 꽉 껴안았다. 겨울밤의 약간 쌀쌀한 공기 속에서 나는 그의 몸의 따스한 기운으로 가득 찼고, 콧속도 샤오이의 검은 삼나무 향으로 가득해졌다.
"네가 이렇게 부르니까 난 지금 널 더 놓아주고 싶지 않은데, 어떡하지?"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고, 그 목소리는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어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다행히 이때 이미 콘서트가 시작되었고, 모두들 연주가들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나는 몸을 숙여 샤오이의 얼굴을 쪼아버렸다.
"또 나 안 내려주면 나도 너 깨물어 버릴 거야!"
내가 깨무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자 샤오이는 웃으며 결국 나를 내려주었다.
"사람을 깨물 줄도 알고, 왜 이렇게 사나워?"
분명 적반하장으로 나온 건 그였지만, 나는 계속 사나운 척했다.
"맞아, 난 사람을 깨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잡을 수도 있어!"
나는 레서판다가 시위하는 모습을 흉내 내며 두 손을 들고 갑자기 샤오이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는 덥석 받아 품에 꽉 안았다.
이 순간, 바깥세상의 소란과 추위는 모두 그의 따뜻하고 힘찬 포옹에 의해 차단되었다.
나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 레서판다처럼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의 품속으로 머리를 파묻을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너한테 잡힌 것 같지......"
샤오이는 낮게 웃으며 내 입술에 키스했다.
"맞아, 그리고 난 좀 꽉 붙잡아야 해. 너도 저 레서판다처럼 날 보고 도망가지 않게."
샤오이는 팔을 조이며 나를 더 꽉 껴안았다.
나는 샤오이의 가슴 위를 부빗거리다 웃으며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 없어, 이 레서판다는 도망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평생 너한테 찰싹 달라붙어 있을 거거든."
"기꺼이 함께하도록 하죠."
멀지 않은 불더미 근처에서 이따금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기쁘게 웃음 띤 얼굴로 모닥불 주위에서 손을 잡고 노래하며 춤췄다.
치솟아 오르는 불꽃이 나무 위의 반짝이는 별빛 등과 함께 이 밤을 무지개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순간, 바로 멀지 않은 구석에서 한 쌍의 연인이 작은 약속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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