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시 페인팅 재료 상자를 닫자, 나도 모르게 샤오이의 옆얼굴이 떠올랐다. 산뜻하고 아름다운 색채가 그의 턱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결국 넥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별일 없는 한, 이 한 획을 그었을 때 튄 물감이 몇 방울 그의 눈 밑에 떨어질 것이고, 그 작은 점과 잘 어울렸다.
'윙--' 휴대폰의 진동이 갑작스럽게 울렸고, 나는 머릿속으로 상상한 대상에게 바로 붙잡혔다는 당혹감에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전화를 받았다.
"오, 왜 이렇게 빨리 받아?"
"그냥 핸드폰 보고 있었는데 딱 좋게......"
"목소리가 좀 자신 없게 들리는데, 마침 핸드폰을 보고 있었던 거야, 아니면 마침 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
솔직히 다 말할 테니까 웃으면......안 돼."
"자백이 정말 빠르네. 배달 필요해? 방문 서비스야."
"너 어떻게 이것도 알아맞힌 거야!! 확실히 너희 집에 가져갈 물건이 좀 있어."
"내가 말하는 배달은 널 데려다주는 건데.
네 말은, 오늘 너 말고도 선물이 있다는 얘기야? 보아하니 어쩌다 미리 서프라이즈가 생긴 것 같은데."
"아무튼 네가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알았어, 그럼 내가 지금 데리러 갈게."
"아니야! 난 이미 나와 있으니까, 넌 그냥 집에서 나 기다리면 돼."
통화를 마친 뒤, 내 마음속에는 다시 나쁜 짓을 하려 했다는 죄책감이 솟구쳤다.
하지만 색이 변하는 물감도 서프라이즈의 일종이라 할 수 있으니 샤오이의 새롭고 재미있는 정의에 부합할 것이다.
샤오이의 집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렸지만 한동안 인기척이 없었다. 샤오이가 한창 바쁜가보다 짐작하고 있을 때 탁탁 슬리퍼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눈앞의 사람은 수증기에 싸인 채 머리카락에서 피부를 따라 떨어지는 굵은 물방울을 닦아내고 있었고, 물방울은 수건 위에서 사라졌다.
"운동하고 샤워하느라 방금 문소리를 들었는데 오래 기다렸어?"
"얼마 안 됐어......"
나는 건조하게 대답하며 발을 들어 문으로 돌진했다.
보기엔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지만, 내가 살짝 시선을 옮기는 걸 눈치챘는지 샤오이는 내 다른 쪽 발이 들어오기 전에 내 몸 옆에 벽을 잡고 나를 막아섰다.
"왜 이렇게 서먹하게 굴어? 시선도 피하고."
원래 부끄러운 마음뿐이었는데, 샤오이가 샤워 후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몸으로 다가오자 아직 가시지 않은 더운 기운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모여들었고, 내 입술이 말라버렸다.
나를 위한 변명도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뒤따라왔다.
"너무 더워? 왜 얼굴이 빨개졌어. 물이 아직 안 식었으니까 너도 가서 씻을래?"
나는 앞을 가로막은 눈앞의 팔을 잡고 밀치락달치락하다 그를 욕실로 돌려 '보냈다.'
"안 닦으면 감기 걸릴 거야!"
"잠옷 한 벌 갖다줄래? 옷장 맨 끝 서랍에 있어."
벽을 사이에 두고도 여전히 샤오이의 웃음 띤 목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대답하고 도망치듯 침실로 뛰어들었고, 별다른 시간을 들이지 않고 샤오이가 말한 서랍을 찾았다.
서랍 속 각종 잠옷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진 않았지만, 계절과 색상에 따라 종류별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내 손가락은 긴 소매와 긴 바지를 스쳐 지나가다 결국 그의 몸에 그림을 그리기 쉬울 것 같다는 사심 때문에 민소매 셔츠와 긴 바지 조합에 멈춰 섰다.
잠옷을 건네준 뒤에 샤오이는 빠르게 갈아입고 나왔다. 나는 페인팅 세트 상자를 열고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그가 나오는 걸 보고 손을 붓 삼아 멀리서 그의 몸 위에 손짓했다.
샤오이는 제품 설명서를 꺼내 마음대로 몇 번 보더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바로 이해했다.
"그림으로 말해요 하자고? 네가 숨기던 서프라이즈가 이거야?"
샤오이는 놀리는 듯한 웃음을 짓고는 물감이 든 작은 병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내 몸을 보았다.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네가 걱정해야 할 건 한계가 있는 내 그림 실력이야."
샤오이가 자발적으로 이 문제를 꺼내자, 나는 말 속도를 늦춰서 나 자신을 더 여유롭게 보이게 했다.
"난 누구 몸에 그린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 그림으로 말해요니까, 당연히 내가 그리고 네가 맞혀야지."
샤오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의외로 저항하는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현실을 받아들였고, 심지어 머리를 숙이고 자기 몸 위의 옷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아직 그렇게 무더운 계절도 아닌데 이렇게 '시원한' 잠옷을 골라줬다 했어.
선수 치는 게 유리하다는 것도 알고, 발전했네, 샤오샤오우."
"그럼, 크게 생각해야지."
샤오이는 뻔뻔하게 말하는 나를 보고 웃기만 하다가 상자 안의 병과 깡통을 차례대로 꺼냈다. 물감 병 위에 인쇄된 부드럽고 아름다운 인체 곡선의 스티커를 보고는 갑자기 웃음이 깊어졌다.
"내가 경계를 넘어서 바디페인팅 모델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해 봤는데."
"그렇게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야! 그냥 간단하게 그리는 건데......
어? 너 왜 벌써부터 뭘 기대하는 거야?"
샤오이는 손에 들고 있던 물감 병을 내려놓고는 책상 모서리에 걸려 있는 스포츠 헤어밴드를 집어 들고 손가락에 휘감았다.
"너도 뭔가 꽤 기대하고 있는 거 아냐? 내 몸에다 뭘 남길지."
손에 든 헤어밴드를 위로 들어 올린 샤오이의 눈빛에서는 하고 싶어 안달 난 한 줄기의 충동이 은은히 드러났다.
"차라리 내 눈을 가리고 더 크게 노는 게 낫겠어.
나도 마침 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시각을 뺏긴 레이서가 다른 감각만으로도 예술가의 창작물을 알아맞힐 수 있는지."
"예술가라는 호칭은 내가 감히 받을 수도 없지만,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하면 안 될 텐데. 하나도 못 맞힐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스스로 두 눈을 결박하겠다는 샤오이의 제안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더 기대하게 만들었음에도, 그 자신은 여전히 당황하지 않고 침착했다.
"이렇게 날 생각하면서 물을 빼 봐. 예를 들면, 약필화를 그리는 대신에 고양이 발 모양으로 찍는 거지."
나는 그의 뜻을 알아 듣고 머리를 숙여 내 손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오므라든 손가락은 확실히 고양이 발과 비슷했다.
"이따 내가 샤오샤오이얼싼쓰 다 데리고 하나하나 도장 찍어볼 거야, 네가 분간할 수 있는지."
샤오이는 웃으며 도장 찍는 동작을 흉내 내는 내 손을 붙잡았다. 나의 도발을 억누른 뒤에는 손아귀의 부드러운 살을 가볍게 꼬집을 뿐이었다.
"그래도 샤오샤오우가 직접 해야지, 그녀를 알아보는 건 내가 가장 자신 있으니까."
그림 그리기 대사
"데님 소재 헤어밴드가 낯이 익은데......아, 혹시 작년 생일에 그에게 만들어준 데님 옷에서 남은 원단인가?"
(눈 가리기) 이거 옭매듭으로 묶은 거야? 왜, 내가 나쁜 짓 할까 봐?
(공통) 샴푸 바꿨어? 냄새가 좋은데.
(공통) 내가 간지러울까봐 그러는 거야 아니면 아플까봐 그러는 거야? 괜찮아, 힘껏 마음대로 그려.
(공통) 확실히 약필화 같은데? 역시 대디자이너님답게, 약필화에도 디테일이 살아있네.
01. 그리기 부위: 손목
"여기 튀어나온 부분은 힘줄이겠지, 혹시 손 힘이 셀수록 더 두드러지는 건가?"
(손목 잡기) 너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아도, 숨결로 네가 정말 가까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실패) 큰 문제는 아니니까 다시 그리면 돼. 게다가, 나한테는 여기 빈 손이 하나 있잖아.
(성공) 다시 안 해도 돼? 그럼 곧 대답할게.
<이벤트 스토리 1장>
그려진 작은 깃발을 보며, 나는 만족스럽게 샤오이의 손목에 바람을 불어 물감이 빨리 마르도록 했다.
붓을 들었을 땐 가장 흔한 사각 깃발로 그리려 했지만, 사각형의 물건은 너무 많다는 생각에 고심 끝에 삼각 깃발을 그렸다.
언뜻 보면 삼각형은 사각형보다 지향성이 있어 보이지만, 샤오이는 약간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을 좀 해보다가 결정적인 힌트를 주기로 결정했다.
"처음 해보는 거니까, 내가 초보자 혜택을 줄게.
네 직업과 관련된 물건이야."
샤오이는 거의 바로 반응했고, 눈을 가린 헤어밴드를 풀며 입을 열었다.
"깃발이야?"
다시 빛을 얻은 샤오이는 손을 들어 손목을 눈앞에 대고 살펴보았다.
"정말 귀엽네. 경기장 깃발에는 익숙한데, 이렇게 작고 깜찍한 건 처음 봤어."
난 이제야 그가 일부러 가까이 손목을 대고 본 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분명 경기장이랑 관련 있다고 굳이 말하면서 내가 그린 작은 깃발을 놀리는 것이다.
"나도 알아들었어! 내가 준 힌트가 별로라고 말하는 거지?"
샤오이가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는 약간 화가 나서 입을 삐죽 내밀고 반박했다.
"내가 이렇게 힌트를 준 건 근거가 있어.
처음에 뭘 그려야 할지 고민하면서 내가 구상한 도안은 디테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네가 말한 답도 그렇게 정확한 건 아니야."
샤오이는 눈썹을 고르고는 또 영롱하고 앙증맞은 삼각 깃발을 보았다.
"왜, 그럼 내가 어떤 깃발인지 구체적으로 맞혔으면 좋겠어?"
샤오이는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고, 책상 위에 팔꿈치를 괴고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면서 음흉한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그럼 너 일부러 깃발 종류까지 공부했겠네?"
"맞아, 게다가 경기 은어까지 모두 보충했다고."
샤오이 입가의 웃음기는 더욱 깊어졌고, 손을 뻗어 내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칭찬해 줘야겠네. 내 가족 관람석을 확실히 차지하려고 이렇게까지 노력하다니."
내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가볍게 기침할 수밖에 없었다.
"말 끊지 말고 빨리 맞히기나 해."
나의 따가운 눈초리에 샤오이는 마지못해 팔짱을 끼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 맞히겠는데, 대단한 화가님은 더 이상 힌트를 안 주시려나?"
내가 원하는 대로 샤오이가 굴복하자 기쁜 마음에 거의 직접 정답을 말하는 것과 버금가는 힌트를 주었다.
"네가 성심성의껏 물어봤으니까 내가 시원하게 알려주자면, 네가 가장 자주 보는 종류야."
"내가 가장 자주 보는 거? 보아하니 결승선에 골인했을 때의 체커기 같네."
매 경기가 끝났을 때 항상 나오는 우승자를 위해 바람에 펄럭이는 체커기는 확실히 샤오이가 가장 자주 보는 풍경이다.
담담하게 답을 말할 때 샤오이의 눈동자에는 가느다란 빛이 반짝거렸다. 이건 맹목적인 자만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태연한 진술이었다.
샤오이는 다시 손목을 뒤집었다. 손목 위의 물감이 점점 짙은 색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이 깃발에 색을 칠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체커기라고 할 수 있어?"
나는 더 이상 뜸들이지 않고, 그림을 그릴 때 반짝였던 신기한 빛을 즐겁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 색칠하려고 했었는데, 테두리를 그리고 나니까 갑자기 떠오른 영감이 있었어.
디자인 소프트웨어에서 회백색 격자는 투명 레이어를 나타내거든.
색칠을 안 했으니까 투명한 거랑 같고, 자체 격자무늬를 갖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사실 자세히 따지고 보면 억지스러운 논리인데도, 샤오이는 내 당당한 표정을 보고 웃으며 모두 용인해준다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디자이너의 눈이 있어야 이런 걸 볼 수 있는 거네.
이렇게 하면 좋겠다, 우리가 서로의 선생님이 되는 거야.
수기 신호가 뭔지 알고 싶으면 나한테 물어보면 되고, 나도 너한테서 평소에 접한 적 없었던 디자인 지식도 배울 수 있고.
디자이너 경연 대회에서 가족석이라는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될 거야."
샤오이의 눈빛이 반짝였고, 시선은 그의 손목을 가볍게 매만지는 내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샤오이의 손목 위의 이미 마른 작은 깃발을 누르며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원한다면 있을 수도 있지.
디자이너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걸 가장 잘하거든, 현실에 없다면 만들어내면 돼.
예를 들면, 내 인생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 대한 전용석이라던가."
나는 샤오이의 시선을 맞이하며 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숨결을 느꼈다. 결국 서늘한 그의 이마가 나의 이마와 살짝 닿았고 보이지 않는 도장이 찍힌 듯 했다.
"그럼 그렇게 하자."
02. 그리기 부위: 어깨
"정말 넓다.....그래서 지난번에 날 들었을 때 힘들지 않았던 건가?"
(상의 벗게 하기) 나쁘진 않아, 머리카락으로 얼굴 쓰다듬는 전술을 쓰면 내 판단을 방해할 순 있지.
(실패) 가장 좋은 각도를 찾고 있다고? 진작 말했으면 내가 좀 더 숙여줬지.
(성공) 하마터면 테두리를 기억해야 한다는 걸 깜빡할 뻔했어, 네 손끝만 느끼고 싶었거든.
<이벤트 스토리 2장>
눈을 가린 헤어밴드가 단단히 묶이지 않은 탓인지, 내가 손가락을 거두는 동시에 흘러내렸다.
그러나 샤오이는 훔쳐보지 않았고, 다리를 들어 올려 떨어지는 헤어밴드를 안정적으로 잡았다.
"다트 그렸지, 맞지?"
"아, 역시 바로 맞히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방금 물감을 묻히고 너무 경솔하게 결정을 내린 걸 약간 후회했다.
거실 구석 벽면에 다트판이 걸려 있었는데, 눈에 띄는 빨강과 파랑의 배색이 쉽게 시선을 끌었다. 그래서 뭘 그려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다트판을 아예 참고용으로 사용했다.
"내가 정말 바보였어, 너희 집에 있는 걸로 그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물감이 묻은 손가락을 물티슈로 느릿느릿 닦아내자, 샤오이도 물티슈를 꺼내서 내 손목을 잡아당긴 뒤에 같이 닦았다.
"내가 이렇게 빨리 맞힐 수 있는 이유가, 네가 비교적 표준으로 그린 것 때문이라면?"
이미 손가락은 꼼꼼하게 닦여서 깨끗해졌다. 샤오이는 내 손을 잡고 가서 다트를 하나 꺼내 내 손가락에 가볍게 쥐어 주었다.
"만져서 어떤 느낌인지 봐봐."
나는 흔히 볼 수 있는 다트와는 정말 다르게 나일론과 비슷한 재질의 부드러운 바늘인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말랑말랑하네."
샤오이가 또 하나의 다트를 들어 손끝으로 다트 몸체를 문지르자, 섬세하게 만들어진 다트가 그의 손끝에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프트 다트야. 이제 집안에 샤오샤오이랑 다른 녀석들이 많아져서, 오래된 다트는 버리고 새로운 걸로 바꿨어."
샤오이는 계속 손에 든 다트를 돌리면서 속눈썹은 늘어뜨리고 입가에는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다트처럼 속도와 힘을 연상시키는 물건이 지금 이 순간 오히려 차갑고 단단한 것으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했다.
집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고양이와 강아지가 그에게 배를 드러내자 비슷한 '포근함'으로 바뀌었다.
그는 손을 들어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트는 하트 영역에 안정적으로 꽂혔고, 한쪽의 전자 스코어보드에는 곧바로 '50'이라는 글자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튀어나왔다.
"너도 해볼래?"
샤오이가 나를 향해 턱을 치켜들고 초대하는 자세를 취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손짓을 따라 다트를 잡고 던졌다.
약간 둔탁한 소리가 난 뒤에, 스코어보드에는 새로운 숫자가 튀어나왔다: '25'점.
"나쁘진 않네, 그냥 던졌는데도 점수가 나오고.
다트는 내가 쓰는 무게라 너한테 딱 맞는 게 아니거든. 손목 동작이랑 힘주는 곳을 살짝 조절하면 더 잘 던질 수 있을 거야."
뼈마디가 뚜렷한 큰 손이 내 손목을 잡았고, 가늘고 긴 손가락이 잡는 동작을 조절해 준 뒤에 난 또 하나의 다트를 던졌다.
다트의 머리에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곧장 중심으로 달려갔고, 점수판에 오색 불꽃무늬가 터지자 나는 흥분해서 눈이 커졌다.
"와, 하트 중앙에 맞았어! 다시 한번 해주면 안 돼? 이번에는 모든 동작 요령을 확실하게 기억해 둘게."
"물론, 잘 기억해 둬."
다시 손목이 잡혔지만, 이번에 나는 샤오이의 품에 완전히 갇혔다.
"너는 두 손가락으로 잡는 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아, 그럼 계속해 보자.
손가락은 가능하면 다트 막대랑 날개는 건드리지 말고, 응, 그렇게."
진짜 몸소 가르쳐 주는 샤오이의 손은 나한테 너무 커서, 매번 동작을 조절할 때마다 거의 내 손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등 뒤쪽의 몸에서는 끊임없이 열기가 전해져 왔지만, 몸 앞의 작은 다트가 나의 모든 집중력의 원점이 되었다. 나는 가능한 한 온 정신을 집중했고, 눈도 손 위로만 향했다.
갑자기 한 손이 허리를 반쯤 움켜쥐었고 요령 하나하나를 기억하는데 몰입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서 심하게 떨었다.
나는 내 반응이 좀 어색한 것 같아서, 작은 소리로 변명했다.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잖아......"
"알았어, 다음에 만질 땐 미리 알려줄게."
샤오이는 다소 웃겼는지, 뒤에 있어서 그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가벼운 진동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내 허리를 잡은 그 손은 나를 살짝 뒤로 옮겼고, 상반신 위치를 고정시킨 뒤에 귓가에 따뜻한 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다음으로 알려줄 손동작은 없고, 이제 다리를 움직일 차례야."
"......이번엔 마음의 준비가 됐어."
샤오이는 또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발끝으로 내 무릎을 구부려 다리 위에 하반신의 무게 중심을 두게 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나는 방금 내가 던졌을 때 당겼던 힘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면서 점차 어깨와 팔을 안정시켰다.
뒤에 있던 사람은 천천히 손을 뗐고,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침착하게 하트 부분을 조준했다.
자세, 힘, 각도가 모두 완벽히 복제되었고 다트의 머리는 곧장 하트 영역을 향해 바로 날아가 기대했던 숫자 50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샤오이 빨리, 빨리 봐봐!"
나는 마음속의 기쁨을 참지 못하고 점수가 나오는 순간 벌떡 뛰어올라 흥분하며 고개를 돌렸다.
내 뒤에서 샤오이는 한쪽 캐비닛에 기대어 있었고, 스코어보드를 보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 두 옅은 초록색 눈동자는 경쾌한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시종일관 나를 바라보며 지금까지 벗어나지 않았다.
"네가 손을 쓴 순간부터 난 결과를 알고 있었어.
어쨌든 소질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내가 다 가르쳐줄게."
03. 그리기 부위: 장골
"얼마나 힘들게 훈련하면 이렇게 탄탄한 복근을 얻을 수 있을까?......이런, 이럴 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잠옷 밑단 걷어 올리기) 습--내가 작은 도둑 고양이 한 마리를 집에 들였나 봐.
(실패) 나도 긴장 안 했는데 왜 네가 긴장해? 걱정하지 마, 난 도망갈 줄 모르거든.
(성공) 잘 맞혀볼게. 내가 맞히면, 넌 왜 그렸는지 네 입으로 직접 설명해줘야 해.
<이벤트 스토리 3장>
아마도 난 아직 배짱에 맞는 심리적 자질을 완전히 갖지 못한 것 같다. 장골 근처에 도안을 그리겠다는 도깨비에 홀린 듯한 내 행동은 결국 나 자신에게 어려움을 더한 셈이었다.
똑같은 인체 조직일 뿐 위치만 다른 거라고 허튼 생각하지 말라고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최면을 걸었지만, 여전히 가슴은 빠르게 두근거렸다.
"너 왜 떠는 거야? 삐뚤빼뚤하게 그리면 내가 어떻게 맞히라고?"
난 샤오이의 속뜻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뻔뻔하게 시치미를 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떨었다고? 아닌데? 네가 움직여서 그런가 보네."
"적반하장이네? 내가 움직였으면 네가 그린 위치가 여기랑 달라져야 하잖아."
난 '위치'를 은근히 강조하는 샤오이의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하며 계속 기만하려고 했다.
"마음에 안 들면, 그, 그럼 네가 골라. 내가 어디에 그려줬으면 좋겠어?"
손가락에 남아 있는 물감이 다른 곳에 묻을까 봐 나는 샤오이의 아랫배에서 떨어지고도 손을 들고 있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샤오이는 힘들이지 않고 내 손을 잡았다.
"그래도 그림은 네가 잘 그리니까, 나보고 고르라고 하면 좀 어려운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샤오이는 서슴없이 내 손가락을 끌어당겨 자기 몸 위로 움직였다.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장골의 가장자리에서 허리와 배 위까지 미끄러뜨렸다가 세로에서 가로로 근육의 결을 따라 느릿하게 지나갔다.
손끝에 여전히 촉촉한 물감이 피부 위에서 미세한 마찰음을 냈고, 갑자기 조용해진 환경에서 앰프를 켜는 듯한 소리 같아서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거울을 안 봐도 난 알 수 있었다. 나는 삶은 새우처럼 온몸이 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너, 내가 한눈팔지 않게 해야 더 잘 맞힐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입을 열어 무의식적으로 그의 생각을 긍정하려 했지만 샤오이는 갑자기 내 손을 제자리로 가져왔다.
"아냐, 안 고를래. 해 보니까, 한눈파는 건 내 탓인 것 같아.
정력(定力)은 더 연습해야겠어."
샤오이가 내 손목을 잡은 힘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고, 입꼬리도 갈수록 더 뚜렷하게 올라갔다.
"맞힐 수 없는 원인은 다 찾았으니까, 먼저 손 좀 놓아주면 안 돼?"
"알았어."
샤오이의 손이 너무 갑자기 풀리는 바람에 원래 약간 뒤로 젖혀져 있던 자세가 소파 가장자리로 바로 날 넘어지게 했지만, 입 속의 비명이 아직 나오기도 전에 장본인이 벌써 나를 잡았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그는 내 옆구리를 두르고 있던 손을 꼬리뼈 가까운 곳에 두었다.
이런 자세는 내가 몸 아래의 소파에 기댈 수 없게 만들었고, 어쩔 수 없이 몸에 힘을 주어 상반신의 힘으로 스스로 안전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심상치 않은 건, 눈앞에서 점점 더 제멋대로 웃는 모습에서 그가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코어 힘이 좋은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직.....더 오래 버틸 수 있어."
나는 허둥대며 소파에 주저앉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듯한 소리가 이미 내 힘이 다 빠져버렸다는 사실을 모조리 드러냈다.
"힘들어 보이니까 일단 도와줄게."
등 뒤의 그 손이 가볍게 위로 올라와 내 몸을 바로 잡았다. 나는 나 자신의 허약한 호흡 소리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샤오이는 더 환하게 웃었다.
"방식을 바꿔서, 너도 참아보려고 노력하는 걸 느끼게 해준 거야.
이제, 우린 비긴 거야."
난 붉어진 얼굴을 숙이며 감췄고, 살며시 자리를 옮겨 앉은 자세를 조정하자 검은 머리가 갑자기 다가왔다.
샤오이가 내 어깨에 턱을 살짝 얹자 내 손은 자연스럽게 그의 머리 뒤로 끌려갔다.
"눈가리개가 좀 헐렁해졌으니까 단단히 묶어줄래. 이왕 비겼으니까, 우리 한 번 더 그려볼까?"
"......좋아."
나는 홀린 것처럼 순순히 그의 목덜미를 감았고, 내 목은 밀착된 그의 호흡 때문에 온도가 점점 올라갔다.
"이제, 네가 어디에 그려줬으면 좋겠는지 생각났어. 위치는 내가 고를게.
넌 다시 손 떨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만 하면 돼."
이벤트 페이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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